본 면은 처음 계곡방(磎谷坊)이라고 불러 왔는데, 노곡면이라 한 것은 그후에 일이다. 현종3년(1662) 허목이 지은 척주지에 본면을 노곡(蘆谷)이라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는 그 당시 혹은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곡(蘆谷)이란 어원은 이곳 면내의 산(山) 천(川),리(里),동(洞),곡(谷)의 방언을 조사하여 밝힐 수밖에 없는데 「올미개골」혹은「올뫼개골」즉 한자로 쓰면「올산계곡(屼山磎谷)」의 방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올미」혹은「올뫼」란 말은 현 월산리(月山里)를 지칭한 것인데, 위의 척주지에는 이 마을을 올산(屼山)이라 하였고, 영조35년(1759)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이 마을을 「오을산리(五乙山里)」라 하였으니, 지금의 월산리(月山里)라 한 것은 그후의 일이다. 월산리는 지금의 하월산리에서 들입재(野入峙)까지의 산골짜기를 지칭한 곳인데, 이곳은 물이 모여 합하는 곳 (물 어러미), 길이 모여 합하는 곳(길 어부러미)으로 「어부러미」가 와전되어 올산(屼山), 오을산(五乙山). 월산(月山)이 되었고, 노곡이란 말은 올산개골(屼山磎谷)의「개골 혹은 깨골(磎谷)의」의 적합한 한자로 「갈대노(蘆)」자를 이용하여 노곡(蘆谷:갈골․개골→ 노실․노곡)으로 와전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