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염놀이
고려왕조의 멸망과 공양왕의 비극이 점철된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와 남쪽으로 이어져 잇는 마을이 매원리입니다.

궁촌리는 공양왕의 궁이 있던 마을이라 해서 궁마을, 또는 궁촌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원드르는 왕의 원집이 있었던 곳으로 원평이라고도 부르며 조선시대 재궁원이 있어 여행자의 숙박소로 이용되었습니다. 궁촌과 매원리를 잇는 해안선에는 넓고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은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어 피서관광객을 부르고 있지만 그 옛날에는 이 백사장에 염전을 개발해서 소금을 생산했습니다.

조선 초기부터 말엽, 대체로 서기 1910년까지 소금을 생산했습니다. 자급자족하고 남은 소금은 외지에 팔았으며, 염전을 일구고 소금을 생산하는 일이 생업이 되었습니다. 원평마을에는 염전이 5개소가 있어 염전사업이 대대로 번창해 왔습니다. 궁촌리와 매원리 해안에서 소금을 샌산하던 염전작업과정을 놀이마당으로 재현한 [삼척토염놀이]가 처음으로 재현된 것은 1986년 6월 삼척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제4회 강원특별자치도민속예술경연대회 때였습니다. 심우학씨의 고증으로 남자45명 여자13명 총 58명으로 구성하여 공연되었습니다.

" 매원골 봄바람 불며는/ 원평 뒷산에 진달래 피네/ 가자 가자 이 소야 밭갈이 가자/ 사래긴 염전밭 언제나 다가리 " 백사장에 염전을 일구고 진흙을 파와서 덮어 펴고 다집니다. 황토를 염전 바닥에 골고루 편 다음 소를 이용해서 밭갈이를 합니다. 그 위에 바닷물을 계속해서 퍼붓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가래질하면 수분이 증발하여 황토에 염소가 축적되고 간수가 끼게 됩니다. 이 간수를 받아 가마에 넣고 불을 때서 질 좋은 소금을 만듭니다.

염전을 일구고 간수를 채취하고 소금을 굽는 과정에 일꾼들은 고된 노동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메놀이 노랫가락을 부르게 됩니다. " 매원골 봄바람 불어오며는 " 으로 시작되는 메놀이 노래가락이 이어집니다.

" 구세 구세 소금을 구세 / 이 소금 구워서 무엇을 하나 / 우리나라 금상님 충성하고 / 당상에 학발 모양하세 / 고비 고사리 육계장도 소금이 들어야 맛이 나네 / 한 번 구우면 토염이 되고 / 두 번 구우면 재염이 되네 / 우리집 낭군님 소금장사 갔는데 / 원수의 비바람아 불지 말아라 / 해지고 저문 날에 어디서 자나 / 초가집 처마에 자고나 가지 / 백봉령 굽이굽이 멀기도 하네 / 성마령 고개를 언제나 넘나 / 우리집 서방님 어디로 가나 / 가래 원평 소금받으러 갔지 / 참나무 옥지게 걸머지고 / 피사리 노방때 손질을 하네 / 옥박달 짚신에 간발치고 / 가래 원평에 소금받으러 가네 "

염전을 일구는 과정에서 고된 노동이 계속됩니다. 메놀이 노래가락에 맞추어 작업은 율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작업이 일시 중단되고, 쉬는 시간에는 주모들에게 막걸리를 받아 마시며 공복을 채우고 피로를 풉니다.

염전 주변에서는 한편으로 황지 정선 영월 평창 등 산간지방에서 잡곡을 지고 와 소금과 바꾸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집니다. 소금과 바꾸어 소금가마니를 짊어지고 돌아가는 산골사람들의 구성진 노래가 어우러집니다.

메놀이 노래가락에 받아넘기는 후렴의 " 이히히- 호호" 하는 소리는 소금굽는 노동요로서 노동의 신바람을 일으킵니다. 삼척지방에는 메놀이(메나리)라 불리우는 풍년기원의 민요가 전해지는데 강릉지방에서는 오돌똑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메놀이 가락에 맞춘 염전놀이 가락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소금을 굽는 민속놀이는 그 옛날 생업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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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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