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부터입니다. 구석기시대란 일반적으로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나서 돌로 만들어진 도구를 사용하였던 시기를 말하는데 세계적으로는 20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서는 50만 년 전부터 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유적유물은 삼척시 원덕읍 노경리와 동해시 북평동 구호마을, 발한동택지개발지역에서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입니다. 세계적으로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7,000-8,0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며,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는 기원전 5,000년경에 시작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토기(빗살무늬토기)의 사용과 농경의 시작을 들 수 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은 아직 삼척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나 인근의 양양군 오산리와 강릉 영진리, 금진리 등지에서 출토되었으므로 앞으로 삼척지역에서도 신석기유적의 발견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판단됩니다. (단군왕검 BC2,333년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는 신석기의 즐문토기(櫛文土器 :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집단이 후퇴하기 시작하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중국의 철기문화가 도래하는 기원전후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대의 유적으로는 대개 생활유적(주거지, 생활유물)과 무덤유적(고인돌, 석관묘)으로 대별되며, 삼척지역에서는 원덕읍 호산과 근덕면 장호, 오십천유역의 봉황산 일대, 교동과 성북동 일대, 그리고 인근의 송정ㆍ북평ㆍ구미ㆍ구호동 등에서 마제석촉(磨製石촉)과 석부(石斧:돌도끼), 석검, 민무늬토기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어 청동기시대 당시 삼척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유적인 지석묘(支石墓, 고인돌)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보이지만 동해안에는 고성(장평리ㆍ죽정리) 양양(범부리) 강릉(안현동ㆍ장현동) 동해(부곡동ㆍ이로동ㆍ송정동) 울진(나곡리) 등지에서 10여 기 정도 발견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가 끝나고 철기(鐵器)시대에 접어들면서 문화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색은 철기제조기술의 유입과 그 영향에 의한 새로운 토기(경질문토기, 타날문토기)의 사용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유적유물은 삼척 오십천 하구의 오분동, 맹방리, 노경리 등과 인근 전천강 하류인 북평항만부지와 강릉의 안인리, 양양군 가평리에서 집자리유적이 발견되었으며, 그 외 금진리유적 등이 발굴되어 철기시대 영동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즉, 종래 영동지방의 무문토기 전통이 철기문화와 경질회도(硬質灰陶)가 전래된 뒤에도 지속적으로 융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철기와 함께 기존의 석기(石器)를 다량으로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철기시대의 역사적 배경은 한반도에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정립 직전의 시기로서, 한군현(漢四郡)이 한반도 북부를 지배하고 있을 무렵입니다.

당시 동해안 북부지방은 임둔군(臨屯郡)의 통치를 받다가 기원전82년에 임둔군이 폐지되자 일시 현도군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그 뒤 현도군이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어 낙랑동부도위(樂浪東部都尉)가 관할하다가 AD(기원후)30년 낙랑군(樂浪郡)의 내분으로 동부도위가 철폐됨에 따라 영동지방은 한(漢)나라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 동해안 중부지역은 소위 읍락사회(邑落社會)의 독자적인 군장국가(君長國家)가 형성되었는데 강릉지역에서는 예국(濊國)이, 삼척지역에 실직국(悉直國)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참고 자료 : 삼척시지(삼척시,1997), 삼척의 역사와 문화유적(1995)


청동기시대(BC 1,000년 경)

소형청동기, 비파형동검, 창, 도끼, 화살촉, 장신구 등 생활도구 생산. 지석묘ㆍ무문토기

  • 청동(靑銅) : 구리에 주석(납) 100% 이상 섞인 합금
  • 백동(白銅) : 구리에 주석 25% 이상 섞인 합금

초기 철기시대(BC300년-BC100년경)

청동기와 철기 병용시대. 청동기가 주류. 석관묘, 토광묘, 옹관묘, 수혈주거

철기시대(BC100년-AD100년경)

철 생산, 토기발달, 유리의 생산

  • BC 108년 한사군(낙랑군)이 한반도 전역에 철기문화 보급, BC 2세기부터는 남부지방까지도 본격적인 철기 생산(경주 조양동 토광묘유물)
  • AD 100년경 변한 진한에서 낙랑·대방·왜에 철 수출
  • 출토유물 : 철제 장도·검, 무문토기·와질토기·유리구슬
  • 주거지는 수혈(竪穴)주거, 무덤은 목관을 설치한 토광묘가 주류

페이지담당 :
문화홍보실 ( 전화번호 : 033-570-3225 )
최종수정일 :
2018-02-12 09:00:00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바로가기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