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건국은 태조 이성계에 의하여 실현되었지만 그 터전은 목조 이안사에 의해서 이룩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 시대에도 그렇게 설명되었습니다.
세종27년(1445) 4월에 권제, 안지, 정인지 등이 편찬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는 목조 이안사로부터 왕조의 터전이 잡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동육룡이 나리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 라고 읊었는데 이 육룡의 첫 인물이 바로 목조 이안사입니다. 육룡은 목조 이안사(穆祖 李安社) 다음에 익조(翼祖 李行里) 도조(度祖 李椿) 환조(桓祖 李子春) 태조(太祖 李成桂) 태종(太宗 李芳遠)으로 이어집니다.
목조 이안사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지방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려 고종18년(1231)을 전후한 무렵이었습니다. 이성계가 조성왕조를 개국하기 162년 전후입니다. 목조는 전주에서 출생했고 삼척에 옮겨 살다가 다시 함경도 덕원부(德源府) 용주리(龍珠里)로 옮겼고, 다시 와뚱(幹東)으로 옮겨살았습니다.

목조가 삼척으로 이주하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조가 전주에 살 때 산성별감(山城別監)이 와서 목조가 사랑하는 기생과 관계하자 둘은 싸움이 벌어졌고, 전주의 지주(知州;주의 장관)가 산성별감과 한편이 되어 싸우게 되었습니다. 지주가 조정에 보고하고 군사를 동원하여 목조를 해치려 한다는 정보를 목조는 미리 알고 삼척의 활기리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때 목조를 따르던 170여 호가 함께 이주했습니다. 무슨 연유로 목조가 삼척으로 이주하였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삼척은 목조 이안사의 외가(外家)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목조가 처음 터를 잡은 삼척의 미로면 활기리는 원래 활터라 불렀는데 후에 목조가 살던 터라고 해서 임금황자를 써서 황기(皇基)로 바뀌었습니다. 활터는 궁기(弓基)를 뜻하는 곳이었는데 활터-황기-활기로 그 지명이 변했습니다. 그 터는 현재 미로면 활기리의 두메관광농원에서 조금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목조가 살았던 곳임을 알려주는 구거지비각(舊居地碑閣)이 세워져 있습니다.
활기리는 삼척군 미로(未老)면에 속했고, 미로면은 현종3년(1662) 당시 삼척부사 허목이 미로리(眉老里)라고 부른 데서 오늘과 같은 지명으로 정착했습니다.

이곳에 살 때 목조의 부친이 사망했습니다. 그 유명한 "백우금관(白牛金冠)의 전설" 과 같이 도승이 일러준 대로 백우(白牛)와 귀리금관(金冠)을 준비하여 묘를 쓰게 됨으로써 5대에 이르러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조의 삼척생활은 고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삼척시에서 오십천을 따라 서쪽으로 60리, 상정리에서 15리 노동산에 목조의 아버지 이양무의 묘(준경묘)가 자리잡았고, 목조의 어머니 이씨의 무덤(영경묘)은 동산리에 있습니다.
활기리 목조의 옛 집터에는 지금도 섬돌과 주춧돌이 남아있습니다. 목조가 삼척군 활기리에 부모를 묻고 다시 함경도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앞서 전주에서 싸웠던 산성별감이 안렴사 벼슬에 올라 삼척고을로 순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앉아서 당하기 보다 먼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함경도로 들어갔습니다. 이 때에도 전주에서 따라왔던 170여 호가 함께 이주했습니다.
목조의 삼척 미로면 활기리 생활은 잠깐이었지만 부모를 묻었고 자기의 집터까지 남겼으므로 제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삼척의 활기리가 조선왕조 건국의 터전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삼척시지]. [실직문화] 제1집(삼척문화원,1990), 김영기, "실직국의 인맥" ,[실직문화]제3집, 삼척문화원,1992


조선왕조의 왕은 27명인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왕은 36명

추존왕 9명 ; 목조, 익조, 도(탁)조, 환조, 덕종(성종의 아버지. 의경세자), 원종(인조의 생부), 진종(정조의 큰아버지. 효창세자), 장종(정조의 친아버지. 장형세자), 익종(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

[태조실록] 이성계 가문의 시조-이한(신라 태종의 10대 손)

이성계의 고조(목조 이안사)는 삼척에서 고려 북동 국경지역 의주로 이주, 원나라에 투항 "백호" 라는 관직생활⇒증조 이행리⇒조부 이자춘 대에 원나라의 고려인 차별정책으로 고려에 귀순

고려 우왕

명나라의 요동땅 정벌 추진. 8도 도통사 최영, 우군도통사 이성계, 좌군도통사 조민수⇒위화도 회군⇒창왕 옹립(신돈 자식, 가짜 왕씨)⇒우왕과 창왕 살해⇒공양왕 옹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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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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