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독립의사는 김시영의 아들로 노곡면 하군천리 98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삼척이 본관인 선생은 구한말 원덕면장과 노곡면장, 도평의원을 역임하던 중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하자 조국독립과 항일운동을 결심하였습니다.
선생은 1917년 결성된 대한광복회 재무부장 겸 관동지부장으로 임명되자 그 해 10월 경주에서 일제가 당시 우리 백성들을 수탈하여 거두어들인 세금 8,700원을 탈취하여 독립군 자금에 보탰습니다.

또한 일제가 강제로 빼앗아 운영하던 금광을 습격하고 금괴를 탈취하는 등 독립군 무기구입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선생은 군자금 모금을 거부한 장승원의 집을 습격하여 처단하고 악랄한 일본헌병들의 분소를 폭파했습니다.
그 후 만주로 가서 의병학교를 설립하여 독립투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독립운동하던 동지의 밀고로 붙잡혀 1918년 경성법원에서 3년 선고를 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공주형무소에서 옥고에 시달리면서도 관동지역의 3·1 독립운동을 암암리에 지휘하여 20여 개군 34회 2,500명의 민족 도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1922년 공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소를 하고 활동 중 1924년 경성부에 있는 황금정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일본 경찰의 첩자가 도약을 넣은 음식을 먹고 병고에 시달리다가 그 해 세상을 떠나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는 한을 남겼습니다.
김동호 의사의 높은 뜻을 이어받아 후손들이 1985년 9월23일 공훈비를 세웠으며, 부인의 유해와 합장하고, 묘역을 국가유공자 묘역단장사업으로 비각과 상석을 세웠습니다.
삼척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지휘한 항일독립운동의 인물로 김동호 의사를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 : [삼척의 충·효·열 인물](삼척군,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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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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