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랑총(鄭娘塚)

도계읍 대평리(大坪里) 정씨 집안에 절세의 미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절세의 미인에게 장가만 들면 첫날밤에 신랑이 죽어 결혼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런데 이 숙명을 감당해 내겠다고 자진해 나타난 총각이 있었다. 양양(襄陽)사람인 노중경(盧重慶)이 구혼해 온 것이다. 
정랑(鄭娘)은 장래가 유망한 이 젊은 선비를 자기의 숙명 속에 말아 넣어 죽이고 싶지 않아 구혼을 거절 했다. 담력이 있어 장래가 촉망되는 이 총각을 그녀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노중경은 그녀가 자기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지체가 없는 집안이라고 하여 거절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그래서 그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그의 공부한 보람은 햇빛을 보아 5년 후에 과거에 급제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급제하여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녀는 자결하고 말았다. 그 무덤을 정랑총이라 한다. 
정랑총은 도계읍 대평리 조산에 있다. 향토지에 의하면 이조 순조때 양양인 노중경이 동래정씨 항지의 딸과 약혼하였다가 정랑의 극심한 반대로 파혼하였는데 이에 분개한 노중경은 이를 악물고 책을 읽은 끝에 순조5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보라는 듯이 대평의 마을을 통과함을 듣고 정랑은 원한을 품고 자살하여 이곳에 묻히고 정랑총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페이지담당 :
문화홍보실 ( 전화번호 : 033-570-3225 )
최종수정일 :
2021-06-01 16:36:04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가:

바로가기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