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金尙台)
1864-1912, 한말의병장,
본관은 삼척이며, 본명은 상호(尙鎬), 자는 경대(景大), 호는 백우(白愚), 충청북도 단양에서 태어났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1896년 을미의병이 봉기할 때에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와 함께 문경에서 안동관찰부사 김석중(金奭中)을 처단하는 등 기세를 떨쳤다. 그후 이강년과 같이 유인석(柳麟錫)의 제천의진에 합류하여 전공을 세웠다. 1907년 고종의 퇴위와 정미조약이 체결되자, 이강년과 함께 다시 의병을 일으켜 중군장으로 대일 의병항전을 전개하였다. 1908년 이강년이 체포되고 순국한 뒤에는 의병장이 되어 경기도·강원도·경상도 일대에서 계속 항전하였으며, 그 용맹함이 세인을 탐복하게 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점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1911년 5월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에도 의병의 기상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였으나, 결국 단식투쟁으로 마침내 옥사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이강년 의병장의 무덤곁에 묻혔다. 1963년 건국훈장국민장(建國勳章國民章), 1990년 건국훈장독립장(建國勳章獨立章)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