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무인. 본관은 삼척, 1387년(우왕 13) 삼척 지군사(三陟知郡事)로 남은(南誾)이 부임하자 그의 휘하에 있으면서 왜구를 소탕하는데 전공을 세웠다. 그로 인하여 안인포만호(安仁浦萬戶)를 거쳐 장기현사(長?縣事)를 지냈다. 1416년(태종 16) 울릉도 안무사(按撫使)가 되어 유리하는 백성이 그 섬으로 도망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 땅을 비워두었다. 이때 복명서에는 [토지가 비옥하고 대나무의 크기가 다릿목 같으며, 쥐는 크기가 고양이 같고 복숭아의 크기는 됫박 만한데, 모두 물건이 다 이렇다] 하였다. 또 1425년(세종 7)에도 울릉도 안무사가 되어 다녀왔다. 그의 자손들은 삼척 도호부 이속(吏屬)이 되어 부중(府中)에 많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