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 초명은 용건(用鍵), 자는 이계(而啓), 호는 호해정(湖海亭), 사평(司評) 인복(仁福)의 아들. 1660년(헌종 1)에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1611년(광해군 3)에 본도순상(本道巡相) 오윤겸(吳允謙)에게 향교의 동서무(東西?)를 건축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홍립(姜弘立)의 죄에 대하여 각처에 격문을 돌렸다. 1631년(인조 9)에는 사림(士林)들과 협의하여 경행사(景行詞)를 지어 김효원(金孝元)을 향사하였다. 저서로는 호해유집(湖海遺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