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바위와 해랑당(海娘堂)

삼척에는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이 전래되고 있는 마을이 있다. 원덕읍 신남리인 섶내미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이다. 갈산(葛山)과 신남(薪南)을 합쳐 갈남리가 되었는데 부르기는 신남리이다. 
신남리에는 나무로 남근(男根)을 깎아 매달고 금줄을 쳐서 제사 지내는 해랑당(海娘堂) 고사가 있다. 해랑당의 신수(神樹)인 향나무 가지에는 실물 보다 조금 더 큰 향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깎은 남근이 엮어져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신남리 마을 동북쪽 바다에 닿아 있는 야트막하나 길게 뻗은 해산(日山) 끝바위 틈에 해랑당 신수는 바다를 향해 무성한 가지를 드리우고 해풍을 맞고 있다. 해산 자체가 동해 푸른 물결 속으로 뻗어 있고 끝머리 용두에 해랑당 신수가 청정하게 서 있어 신비롭고, 남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경이롭다. 신수 앞에는 금줄이 쳐져서 부정한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금한다. 금 줄 뒤 약간 솟은 해산의 정상에 해랑당이 서 있다. 이 네평의 해랑당 건물 안 동편 벽면에는 단정한 용모의 해랑신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 왼쪽 바람벽에 실물 보다 조금 큰 남근 5개가 가지런히 유리 상자 속에 모셔져 걸려 있다. 초상 오른쪽 바람벽에는 2개의 남근이 노출되어 걸려 있다. 고사는 이러하다. 옛날 아주 오랜 옛날 신남리 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 총각이 서로 좋아 지냈다. 오랜 가뭄으로 산천은 헐벗고 백성들은 초근목피마저 없어 굶는 것을 밥먹듯 하던 시절이었다. 궁벽한 어촌 마을인 신남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장 봄 살아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일설은 이른 봄날 처녀는 바다 나물을 뜯으러 해변에서 한참 떨어진〈애바위>에 가겠으니 배를 태워 달라고 총각에게 부탁하였다. 총각은〈애바위>에 처녀를 실어다 주고 한낮이 되면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총각은 뭍으로 나와 밭일에 열중하였다. 신남리 마을 동북쪽 1㎞ 지점 바다 가운데 있는〈애바위〉돌섬은 미역과 김 그리고 소라 등이 많았다. 처녀는 미역 등을 열심히 뜯다 보니, 어느덧 해가 중천에 솟았다. 처녀는 총각이 배를 갖고 곧 오려니 하면서 홍합 등을 따다 보니 바람이 갑자기 불면서 파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약속한 총각은〈애바위>로 배를 띄울 수 없었다. 풍랑이 크게 일어 바다가 뒤집힐 지경이었다. 한낮이 지나고 저녁이 지나고 밤이 와도 풍랑은 그치지 않고〈애바위〉위로 파도가 높이 솟았다. 처녀는〈애바위>에서 보이지 않았다. 처녀가 살려 달라고 애쓰다 죽었다 하여 그 바위 이름을〈애바위>로 불러지게 되었다. 
처녀가〈애바위>에서 죽은 후부터 신남리 마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마을에 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큰 변괴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바다에 나간 마을의 어부들도 풍랑을 만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괴변이 자주 생겼다. 어부들 사이는 물론 온 마을에는 애쓰다 죽은 처녀 때문이라는 등 뒤숭숭한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 어느 날 저녁 한 어부가 화가 나서 바다를 향해 남근을 내어놓고 오줌을 싸면서 욕을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이상하게도 그물에 많은 고기가 잡혔다. 또 하나 전하는 이야기는 좋아지내던 총각의 꿈에 그 처녀가 산발하고 나타나〈나 해랑의 원혼을 달래어 달라〉라는 하소연을 하였다. 총각은 이튿날 당장 향나무로 남근을 깎아 해랑당 신수에 엮어 달아 놓고 처녀의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그 후 부터 총각에게는 고기가 신기하게도 잘 잡혔다. 어부들은 그 연유를 듣고 너도나도 남근을 깎아 신수에 매달아 놓고 제사를 올렸다. 그랬더니 너도나도 모두에게 고기가 잘 잡혔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고기가 안 잡힌 것은 애쓰다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사.오백년 전부터 처녀의 위령제를 지내자고 의논하여 공동으로 실물 보다 조금 더 큰 남근을 깎아 해랑당 신목에 매달고 치성을 올리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해랑당 제사는 마을의 큰 연중행사가 되었다. 
또 하나의 일설은 이러하다. 위의 처녀 총각이 가난했지만 서로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이어서 곧 결혼하게 되었다. 뱃사공 총각은 뗏목 배로 고기를 많이 잡아와서 그 고기 판돈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바다에 멀리 나갔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지나고 하루가 다시 왔다가 또 하루가 지나가도 뗏목 타고 간 떠꺼머리 총각은 영 돌아오지 않았다. 정혼하기로 한 처녀는 매일 매일 바닷가 해산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떠꺼머리 총각을 기다렸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기다리던 처녀는 떠거머리 총각에의 그리움으로 애가 타서 시름시름한 정신으로 산신을 사랑하고 해신을 사랑했다. 그러다 끝내는 미쳐서 바다 위로 걸어서 수평선 너머로 떠꺼머리 총각을 만나러 갔다는 애절한 내용이다. 

※지금의〈해랑당〉건물은 1986년 1월 삼척시비 625만원과 도비 625만원, 총 1,250원 을 들여 새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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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1-06-01 16: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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