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초기에는 지방행정을 정비하지 못하고 신라의 제도를 그대로 따르는 한편으로 지방에는 수령을 파견하지 못하고 지역의 힘있는 호족들의 자치에 맡겼습니다. 삼척지역도 당시의 호족들이 자방자치의 형태를 취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삼척을 본관으로 하는 성관 즉 삼척 김씨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삼척에서는 진주(眞珠)라는 지방별호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삼척에 강력한 호족세력이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방별호라는 것은 지명 이외에 그 지역에 대한 별호를 말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걸쳐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지방에 있던 강력한 호족세력을 위무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본관이나 봉작명을 사용하게 했던 것입니다. 삼척이 진주라는 별호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신라말과 고려초의 삼척지역에 그만큼 강력한 호족세력이 존재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고려는 성종2년(983)에 이르러 12목과 병마사제도를 마련하여 처음으로 지방장관을 파견하였으며, 성종14년(995)에는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는데 오늘날 강원도는 함경남도의 일부를 합쳐 삭방도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도 아래의 주요 고을에는 도단련사 단련사 등을 두어 다스렸으며, 삼척은 삼척군에서 척주로 승격시켜 단련사(전국 11개 주에 둔 지방관. 군사적 감찰기관 성격. 1005년까지 둠)를 두어 다스렸습니다. 현종9년(1018)에는 지방제도를 5도 양계로 정비하고 그 밑에 4도호부, 8목, 56군현, 28진을 두었는데 영동지방은 함경남도 지역과 합하여 동계가 되며, 이때 삼척은 척주에서 삼척현으로 개명됩니다.
고려시대의 군제는 중앙에 2군 6위가 있어서 전국을 통괄하였고, 각 도에는 주현군이 있었으며, 영동지방인 동계에는 일반 주현보다 보강된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삼척은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외적의 침입도 많았습니다. 삼척지역의 외적의 침입은 북방에서 거란과 몽고의 침입, 동해안에서 왜구의 침입으로 이원화되었습니다.
북방으로부터 외적의 침입은 먼저 성종과 현종 연간에 거란의 침입이 있었으나 삼척지역에서는 별다른 전투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고종 연간의 몽고침입 때에는 이승휴가 삼척주민들과 함께 요전산성에서 항전하였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인 목조 이안사도 항전했을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몽고군이 삼척을 비롯한 영동지역을 침입한 것은 제4-5차 침입인 1247-1253년이었습니다.

한편 이 무렵 동해안에는 왜구의 침입 또한 많았습니다. 이처럼 동해안을 통한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원인은 일본 내부의 사정으로 굶주린 일본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며, 주 침입경로가 영동지역이었던 까닭은 동해안의 해류가 일본에서 곧바로 영동 해안지역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왜구의 침입은 공민왕 이후 극성을 부리는데, 이들은 동해안 연안으로 들어와 농민들을 약탈하는 등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이 지역의 주민들은 미륵신앙에 몰입하게 되고, 천년 후의 극락세계를 염원하며 갯벌에 향을 묻는 매향(埋香)의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동해안에서도 매향의식이 행해졌는데 척주지에 의하면 1309년 8월 강릉도 존무사 김천호와 강릉부사 박홍수·삼척현위 조신주 등 동해안의 지방관들이 모여 미륵부처님께 서원하며, 평해 해안언덕에 100조·삼척 맹방촌 물가에 250조·강릉 정동촌 물가에 310조·울진 두정에 200조 등 동해안 5개소에 모두 1,500조의 향나무를 묻었습니다.

한편 고려시대 중·후기가 되면 삼척지역에는 새로운 지방호족이 출현합니다. 개성부윤을 지내고 삼척군대광에 책봉되었던 박원경을 시조로 하는 삼척 박씨, 목조의 비인 효공왕후의 아버지이며 상장군이었던 이강제를 시조로 하는 삼척 이씨, 충렬왕 때 이부시랑을 지내고 삼척군으로 책봉받은 진의귀를 시조로 하는 삼척 진씨 등의 호족들이 새롭게 자리잡으면서 삼척의 지방문화를 한층 다채롭게 꽃피우게 됩니다.


실직군왕 김위옹(悉直郡王 金渭翁)

일명 위웅(尉雄). 신라의 종성(宗姓). 경순왕(敬順王) 부(傅)의 손자. 어사대부지군사(御史大夫知郡事) 검교(檢校) 사농경(司農卿)을 거쳐 은청광록대부 상주국좌승상(銀靑光祿大夫 上柱國左丞相)의 벼슬을 지냈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과 실직군(悉直君)으로 책봉되었고, 후에 군왕(郡王)으로 책봉되었음. 삼척김씨의 시조.

이강제(李康濟)

고려시대 문신. 본관은 삼척. 목조(이안사)의 비(妃)인 효공왕후(孝恭王后)의 아버지. 벼슬은 상장군. 삼척이씨의 시조.

박원경(朴元慶)

고려시대 문신. 본관은 삼척. 신라 속함대군(速咸大君)의 후예.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 권지교서정자(權知敎書正字), 개성부윤(開城府尹) 사농시사(司農侍事) 등의 벼슬을 지냄. 공로가 있어 삼척군대광(三陟君大匡)에 책봉되고 삼척박씨의 시조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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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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