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구선생은 일본군과 맞서서 독립운동을 한 삼척시 미로면 상거로리 출신입니다. 본관은 삼척으로, 자는 계명(啓明)·아명은 명길(命吉) 또는 재규(在圭)라 불렀다 하며, 부친은 심찬조라는 분이었습니다. 어버지의 엄한 교육을 받은 심재구 선생은 1905년 7월에 의병장인 신돌석 장군의 부하가 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하게 됩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당시 북삼면 삼화리 홍월평에 있던 논과 소를 판 돈을 군자금으로 하여 의병활동을 하는 등 나라를 구하는 일로 인해 가정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1908년 11월 신돌석 장군이 전사하자 중부지방으로 출동하여 주명식의 부하로 들어가서 계속적인 의병활동을 하게 됩니다. 심재구 선생은 도총장(都總將)의 직함으로 영주 안동지구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일본군 수십명을 살해하는 전공을 올렸습니다. 1909년 11월 무장한 부하 20여 명을 인솔하고 울진의 각 마을을 돌아 다니며 군자금을 모금하였고, 1910년 6월에는 5명의 부하를 인솔하여 봉화에 거주하는 홍재명으로부터 3백냥을 모금하였습니다.

같은 해 7월 봉화 오산리에서 박찬호로부터 금 14원을 모금하고, 선천리에서 모금활동을 하던 중 1910년 10월 14일 홍재명 등이 일본군에 밀고하여 체포되었습니다. 대구법정에서 소위 강도죄로 10년 징역의 구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1913년 3월 일본군의 심한 고문으로 병환이 생겨 석방되었으나, 집으로 돌아와 9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심재구 도총장은 1977년 12월 13일 국가로부터 건국포장 제 730호를 받았으며, 1984년 12얼 26일 묘비를 건립하였습니다.


※참고 : [삼척의 충ㆍ효ㆍ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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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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