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조상들은 집안의 평안과 가족들의 건강, 생업의 번영을 위해 각 가정에서 갖가지 의례를 행해왔습니다.

삼척지역에도 많은 의례가 전승되어 왔으며, 산간마을과 해안마을의 생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보이지만 목적과 기능은 같다고 하겠습니다.

안택고사

안택은 집안이 일년동안 평안하고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빌기 위해 행하는 가신신앙의 대표적 의례입니다. 대개 정월이나 10월중에 날을 받아 지냅니다. 날을 받을 때는 대주, 또는 부부의 생기를 맞추어 정합니다. 안택하기 3-4일쯤 전에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피워 잡인의 출입을 삼가게 합니다.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안택날이 되면 먼저 당에 올라가 서낭에게 안택을 한다는 사실을 고하고 내려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당에까지 가지 않고 문 앞에서 서낭당을 향해 절하고 술을 올리는 망제로 대신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안택의 순서는 마을마다, 집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먼저 마루에서 성주를 모십니다. 성주의 신체는 대들보에 한지와 실을 매단 것으로 그 아래에 상을 차린 후 제를 올립니다. 가족들은 모두 절한 뒤 식구수대로 소지를 올립니다. 성주를 모신 후에는 안방으로 가서 조상에게 비는데, 이때에는 큰 양푼에 메를 담고 숟가락을 조상의 수대로 꽂아 놓습니다. 이어 다시 상을 보아 부엌에서 조왕에게 빕니다. 부엌에서 군웅을 함께 모시는 곳도 있습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마지막에 바다로 나가 용왕을 모시기도 합니다.

산메기

산메기는 문자 그대로 산에게 무엇인가를 먹이는 신앙입니다. 즉 산을 대접하는 의례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발음이 불분명하여 산매기라고도 들립니다. 그 경우에는 동해안지역의 골매기 신이 고을을 막아주는 것으로 이해하듯 산을 막기 위한 신앙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영동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특히 삼척지역에서 전승이 활발합니다. 해안지역에서도 아직 산메기를 하지만 지금은 역시 산간마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산메기 터는 마을마다, 집안마다 정해진 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로 태백산 줄기의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메기 터가 마을뒷산인 경우도 있지만 쉰음산이나 두타산, 태백산까지 굳이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산메기는 삼월삼짓날이나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등 주로 봄에 하지만 가을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메기를 ‘조상 화전놀이 시키는 놀이’라고도 하는데 무당이나 경을 읽는 복자(卜者) 등 전문가를 데리고 가서 조상을 대접하고 자손들의 발복(發福)을 빕니다. 산메기를 갈 때에는 한 집안의 여러 가족이나 한 마을에 사는 서너 집이 모여서 단체로 가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지역에 따라 여자만 가기도 하고 부부가 함께 가기도 하지만 딸은 데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집안을 이어갈 며느리를 데리고 갑니다.

산메기를 갈 때는 이른 아침에 출발하고 산에 가서 직접 메를 짓는 수가 많습니다. 이때 메는 산신메와 조상메로 두 그릇입니다. 산메기 터는 대개 마을단위로 지정된 장소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나무입니다. 집안마다 정해진 나무가 있어 그 나무 앞에 상을 차립니다. 그리고는 나무 밑동에 한지나 베조각, 실 등으로 폐백을 겁니다. 무당이나 복자는 그 앞에서 징을 치면서 산신, 제석, 삼신 등을 축원한 뒤 베조각을 들고 춤추면서 칼로 찢어 길게 갈라나갑니다. 이는 조상의 길을 갈라주는 의미가 있다고 믿고 나무에 걸어놓습니다. 그리고는 소를 위하여 축원하고 소지를 올립니다. 이러한 산메기는 소와 연관이 깊다고 한다. 산메기를 다니는 집에서는 평소 집안에 ‘산’이라는 신체를 모십니다. ‘산’은 베조각이나 한지, 또는 왼새끼를 꼰 것으로 예로부터 부엌에 있는 소 여물통 위의 기둥에 모셨습니다. 삼척지방의 부엌은 원래 외양간과 붙어, 부엌에서 쇠죽을 끓여 여물통에 부으면 반대편에 있는 외양간에서 소들이 먹을 수 있게 된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소는 ‘산’에 매인다고 하여 소가 아프거나 새끼를 낳을 때면 으레 산 앞에 가서 물이라도 한 그릇 떠놓고 비는 것이 상례였다는 것입니다. 산메기를 다녀온 후 ‘산’은 새 것으로 갈게 됩니다.

산메기의 기원이나 목적은 상당히 복합적이어서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기원을 보면 ‘산’이란 이 지역에서 호랑이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호환을 막기 위한 신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과거 예국(?國)에서는 호랑이를 제사지낸다고 되어있어 남다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비린 것을 먹을 때마다 산에 거는 행위 역시 호랑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소가 산에 메여있다는 말도 호랑이가 물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데서 나왔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산메기는 조상을 대접하고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려는 신앙이 지배적입니다. 소 역시 민간신앙에서 조상으로 모시기 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산신과 삼신, 그리고 조상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라 하겠습니다.

산제당

삼척에서는 가정신앙의 하나로 산제당을 모시는 집이 적지 않습니다. 산제당에 갈 때는 그 집안의 가장인 남자 혼자서 길을 나서고 여자는 따라 갈 수 없는데 이는 부정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좋은 날을 택하여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산에 오르게 되는데 길을 가는 도중에 짐승이 지나간다거나 뱀이 길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일이 생기면 다른 길을 택하여 산제당을 찾아가야 합니다. 산제당에 도착하면 메를 지어 산신님께 올립니다. 이 메를 생우메, 새우메라고도 하는데 밥이 다 되기 전에 솥뚜껑을 열어본다거나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산신이 드시기 전에 잡귀가 솥 안에 들어가 먼저 먹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솥과 수저도 집에서 쓰던 것이 아닌 산신님을 위한 것들을 따로 마련해 놓았다가 사용합니다. 메가 다 되면 생우메 위에 산신님의 수저를 꽂고 촛불을 켜서 불을 밝힙니다. 제를 올리는 자는 경건한 마음으로 소지를 올리면서 집안의 무사평안과 행복을 빕니다. 산제당은 행여 중단하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다니던 사람들은 대개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산제당을 찾는다고 합니다.

산당과 산메기는 집안의 자손발복이 목적이라는 점과 산을 신앙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약간 성격이 다릅니다. 즉 산메기는 마을이나 집안을 단위로 해서 부모 대부터 선대 조상을 위해서 빌어오는 것을 계승하는 경우가 많지만 산당에 가는 것은 개인자격입니다. 그래서 산메기 장소는 보통 집집마다 비슷하지만 산당은 개인마다 가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습니다. 또한 산메기 할 때는 우마를 잘 봐달라는 뜻으로 소지를 올리는데, 산당에 가서는 우마를 위해 비는 경우는 없고 치성만 드립니다.

뱃고사

뱃고사는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처음 배를 진수시킬 때나 고기가 안 잡힐 때, 또는 집에서 안택을 한 후에 지내는 의례입니다. 배에는 의례히 배를 지켜주는 신인 성주를 모시고 있는데 여성주인 경우에는 종이에 색실을 걸고 남성주는 종이만 걸어 모십니다. 뱃고사를 지낼 때는 대개 무당을 불러 간단히 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선주들 가족과 선원들이 모두 모여 절하고 배성주를 위합니다. 근덕면 덕산에서 뱃고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먼저 당에서 빌고 난 후 봉할머니한데 가서 제사를 지내고 배에 가서 제사를 지냅니다. 봉할머니는 바다에서 떠들어왔다는 덕봉산에 있습니다.


민속신앙자료는 [삼척의역사와 문화유적](삼척시·관동대학교박물관, 1995년) "삼척시의 민속자료" 편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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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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