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지방행정조직은 전국을 8개 도(道)로 나누고, 각 도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배치하는 동시에 도의 하부조직으로 부(府), 대도호부(大都護府), 목(牧), 도호부(都護府),군(郡), 현(縣)을 두었습니다.
지방행정의 책임자로는 부에 종2품의 부윤(府尹), 대도호부에 정3품의 도호부사(都護府使), 목에는 정3품의 목사(牧使), 도호부에는 종3품의 부사(府使), 군에는 종4품의 군수(郡守), 현에는 종5품의 현감(縣監)을 수령으로 배치하였는데, 삼척은 태조2년(1393) 목조의 외향이며 선대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 현에서 부로 승격시켰다가(기념으로 홍서대 하사) 태종13년(1413) 삼척부를 도호부로 바꾸어 종3품의 부사를 배치하였습니다.

군사제도는 육군과 수군으로 나누어지는데 육군의 경우 태조6년(1397) 삼척진이라는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그 우두머리인 첨절제사를 부사가 겸직하였는데, 세조1년(1455) 군익도 체제로 인해 삼척진은 강릉도의 우익으로 편성되고 그 수장을 병마단련부사로 칭했으며, 세조3년(1457) 군익도체제가 진관체제로 바뀌면서 삼척진은 거진(巨鎭)이 되어 울진과 평해지역까지 관장하였습니다.

수군의 경우 태조 때부터 부사가 삼척의 수군본부인 삼척포의 만호를 겸직하였는데 세종1년(1419) 부사가 삼척만호를 겸직하던 것을 페지하고 별도의 수군첨절제사를 파견했으며, 세조3년(1457) 진관체제로 바뀔 때 삼척진관을 설치하고 삼척포 첨사가 첨절제사로 되는데 그 아래 안인포ㆍ고성포ㆍ울진포ㆍ월성포를 두었습니다. 그후 인조5년(1627)각 도의 지방군대를 관할하기 위한 진영의 수장인 영장이 파견되면서 삼척포진은 영장이 영동지역의 속오군을 다스리고 울릉도의 치안을 담당해 오다가 고종35년(1898) 삼척포진이 폐지될 때 함께 없어졌습니다. 조선시대 각 급 수령 간의 위계는 부임하는 수령의 품계 차이는 있었지만 부에서 현에 이르기까지 횡적으로는 대등하게 도 관찰사의 지휘감독을 받았습니다. 각 급 수령에게는 지방의 행정권과 함께 군사직과 사법권까지 부여되어 있어 모든 재판을 자신의 명의로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곤장 50대 이상 사형까지는 관찰사의 허가를 받아서 형을 집행하였습니다.

도호부의 사무는 부사의 보조기관인 호장 이하 6방의 이속들에 의하여 분담되었고, 이러한 이속(吏屬)들을 아전(衙前)이라 하였으며 주로 그 지역의 토착인들을 기용했는데 6방의 분장사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방(吏房) - 인사, 비서, 기타 사무에 관한 사항 / 호방(戶房) - 호구(戶口), 공부(貢賦), 전세(田稅), 기타 재정사무 / 예방(禮房) - 의례(儀禮), 제사, 학교 등에 관한 사무 / 병방(兵房) - 군정(軍政)에 관한 사무 / 형방(刑房) - 법률, 소송 등에 관한 사무 / 공방(工房) - 공장(工匠), 영선(營繕) 등에 관한 사무 부사의 군사.경찰권의 보좌역으로는 군교(군관,포교)가 있었는데 이들의 신분은 아전보다 아래직이었고, 이들 군교 밑에 흡예, 문졸, 심부름하는 일수, 죄인을 문초하는 나장, 군인들의 노비인 사령이 있었습니다. 또 통인이라 일컫는 급사직(집사ㆍ사환)이 있었는데 이는 서리(아전)의 아들로서 부사의 신변을 보살폈고, 이외에도 수령의 일상생활에 사역되는 급창(及唱) 고직(庫直) 방자(房子) 등의 관노와 기생, 수급(물심부름꾼) 등의 관노비가 있었습니다.

한편 부사의 자문기관으로 군아(軍衙, 군청)에 향소(鄕所 : 후기에는 향청)를 설치하여 덕망있는 지역의 유력인사를 향임(鄕任)으로 임명하여(부에는 4-5명, 군에는 3명) 향리의 악폐를 방지하고 풍속교정과 군.현의 하부조직인 면(面)의 도윤 즉 면장 추천권까지 부여하였습니다. 향소의 장은 좌수(座首;임기2년)라 하고(차석은 별감別監) 연장자 중에서 수령이 임명하였습니다. 도호부의 하부조직으로 면(面) 또는 사(社) 방(坊)이 있고, 그 아래 동(洞) 리(里) 촌(村)이 있었고, 면 사 방의 장(長)은 존위(尊位) 도윤(都尹) 면임(面任) 방장(坊長) 사장(社長), 그리고 동과 리의 장(長)은 동수(洞首) 리정(里正) 좌상(座上) 두민(頭民)으로 불리워졌습니다.

동. 리 밑에는 최말단조직인 매5호(戶)를 한 개의 통(統)으로 하는 5가통(家統)제도가 있었고, 5개 통을 1개 리로 하고, 약간의 리를 합하여 면(面)으로 하여 농업을 지도하는 권농관을 배치하였습니다.
한편 지방의 교통 통신행정을 관장하는 특수지방관직으로 찰방(察訪 : 종 6품)이 있었고(1508년 역승驛丞 ⇒ 찰방), 삼척은 동해안의 강릉 삼척 울진 평해의 16개 역참을 관할하는 역도 소재지가 있었습니다. (평릉역 ⇒ 교가역)


※참고자료 : 삼척시지


조선시대 교통로

전국 10개의 간선도로. 동해쪽은 관동로 제3로(원주-강릉-삼척-평해) 제10로(충주-안동-봉화-영남)

10리마다 지명과 거리 새긴 장승, 30리마다 큰 장승과 원(院) 설치

1530년 전국에 1,210개의 원 설치. 원 운영-대로변은 5가구, 중로 3가구,
소로 2가구(승려 향리 지방관리, 잡역제외)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원 쇠퇴 ⇒ 민간 주막ㆍ여관 개설

기리고

거리 재는 기구(바퀴를 1리의 백분의 일로 제작, 100바퀴 1리,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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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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