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앙은 마을에서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의례를 다룹니다.

삼척지역에는 서낭제가 어느 마을에서나 전승되고 있고, 그 외 천제(天祭)를 모시는 마을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해안마을에는 성기신앙이 남아있고, 짐대서낭도 삼척지역의 중요한 신앙체라고 하겠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행하는 기우제 역시 집단적 신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외 무당이 주재하는 마을굿이 있으나 이는 별도로 하여 무속신앙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서낭제

서낭제는 서낭제사, 서낭고사, 동네치성 등으로 불립니다. 자연마을마다 서낭당이 있어 행정적으로 구분되는 한 리에 여러 개의 당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예를 들어 미로면 동산리에는 세 개의 서낭당이 있어 반별로 고사를 모시고 있는데, 서낭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로 남녀를 구분하고 있고, 해안마을에서는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당과 해사를 주로 돌보아주는 해서낭으로 나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낭제는 마을마다 정해진 달이나 날짜가 있습니다. 달만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따로 날을 받아 모시게 됩니다. 서낭제의 시기는 정월 초나 정월 보름이 가장 많고 단오나 삼월 시월 중에 하는 경우, 또는 칠월 칠석에 지내기도 합니다. 일년에 단 한번 지내는 마을도 있지만 두 번 내지 세 번 지내는 마을도 상당수가 있습니다. 초곡리의 경우를 보면 정월 대보름과 오월 단오날에 서낭제를 지내고, 그 외 동짓달 초사흗날이 성황당 입주 상량한 날이어서 성황님 생일로 정하고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서낭제를 모시기 전에 마을에서는 먼저 제관을 선정합니다. 서낭제는 남자가 중심이 되어 대표를 뽑아 한밤중에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제관은 마을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마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제관은 제물을 장만하는 도가(유사. 당주. 소임이라고 하는 마을도 있다)와 초헌, 아헌, 종헌의 삼제관, 그리고 축관으로 대여섯명이 선출됩니다. 도가가 초헌을 겸임하는 경우도 있고 이외에 바깥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더 뽑기도 합니다. 이중 특히 도가는 생기를 맞추어 선출하지만 마을의 토박이로서 모범적인 동민 가운데 선정되기 마련입니다.

제관들은 제일이 결정되면 일주일에서 적어도 이삼 일 전부터 금기에 들어갑니다. 마을에서는 서낭당과 제관의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피워 잡인을 금한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서낭당 근처에 함부로 갈 수 없고 제관들의 집에 가는 것도 삼가합니다. 특히 제관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합니다. 상가(喪家)에 가지 않는 것은 물론 부정한 것을 보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바깥출입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마을에 초상이나 해산이 있으면 날을 물리게 됩니다. 마을을 위하여 일하면서 이처럼 금기가 엄격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주민들이 도가를 맡기를 꺼려 이장이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장이 부정을 탔을 때에는 도리 없이 다른 사람이 맡게 됩니다. 제물은 마을에 따라 다릅니다. 대개 포와 어물, 육고기, 삼실과와 백설기 등을 쓰고 서낭당에서 메를 지어 올리며 조라술을 담그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낭신의 성격이 비린 것을 싫어하는 素서낭(대개 중서낭이라고도 한다)인 경우에는 육고기를 쓰지 않습니다. 제물을 구입할 때는 값을 깍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제물구입과 기타 제사에 드는 경비는 집집마다 추렴을 하거나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충당합니다. 즉 동답(서낭답)을 빌려주어 받는 곡식이나 재산의 이식으로 마련하는 것입니다. 해안가 마을에서는 도가바위라고 하여 미역이 나는 바위가 서낭제를 위한 마을 공동재산인 예도 있습니다(초곡리). 또한 마을공동재산은 정월에 주민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모은 돈과 쌀로 만들기도 합니다.

제를 지내는 시간은 대개 사방이 고요한 한밤중입니다. 자정에서 두시 사이에 많이 지내는데 마을의 대표들을 비롯하여 한해동안 집안에 초상이나 해산 등 부정한 일이 없었던 남자들만 올라가 경건하게 지냅니다. 이때 여자들은 올라가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축이 있으면 축을 고하고 없으면, 비손으로 올립니다. 서낭님께 잔을 올린 후에는 마을 가가호호의 소지를 올려주며, 각 가정의 소지가 끝나면 소를 위한 소지도 올려줍니다. 삼척지역의 서낭당은 나무와 당집, 돌무더기나 바위로 된 형태가 가장 많습니다. 당집 안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城隍之神 神位라고 쓴 단순한 위패도 있고, 城隍之神, 土地之神, 勵疫之神을 함께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흙이나 쇠로 만든 말을 모시는 마을도 많습니다. 말은 한 마리인 경우도 있고 여러 마리를 함께 모시기도 합니다. 대개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있는데 서낭을 위해 호랑이와 싸우다가 다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말은 서낭님이 타고 다닌다고 믿습니다. 서낭당 옆에는 대개 수부당이 있어 수부신을 위해줍니다. 수부는 서낭님을 모시던 주민들 가운데 돌아가신 분이 되었다고도 하고 서낭신의 부하라고도 합니다.

해안마을의 서낭제는 특별히 해사를 돌보는 신을 따로 모시는 마을이 많습니다. 즉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과 해사를 돌보는 신으로 갈라져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때 해사를 돌보는 서낭은 대부분 여신이지만 남신일 때도 있습니다. 용화리에는 본서낭당이 1리에 있고 바닷가의 해신당은 2리에 있습니다. 본당에서의 제사는 1리와 2리의 주민 모두가 지내고, 해신당은 어민들만 제사를 올립니다. 또한 노곡에는 서낭당 외에 댕두, 또는 댕우서낭이 있어 해사를 보호해줍니다. 댕우서낭은 바닷가 백사장에 약 2m 정도 높이의 작은 바위가 신체로 향나무가 자라 있는 한쪽 면의 아래에 가로 세로 30cm 정도의 단을 시멘트로 발라 만들어놓았습니다. 댕우서낭에는 바닷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잡게 해 달라고 개인적으로 와서 빈다고 합니다. 이제 서낭제의 구체적인 예로써 갈남마을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갈남에는 두 개의 서낭당이 있는데, 첫째는 호서낭이라고 믿는 마을의 당이고 또 하나는 해서낭입니다. 서낭당은 국도를 질러 마을을 굽어보는 야산 중턱에 있습니다. 서낭당은 기와지붕에 정면은 넉넉한 한 칸으로 3미터쯤 되고, 측면은 두 칸인데 역시 3미터 정도입니다. 안에는 城隍之神이라고 쓴 위패와 촛대하나만이 있습니다. 신격은 할아버지라고 하며 또한 온 몸이 하얀 호랑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서낭님 치성을 모시기 3-4일 전이면 호랑이가 나타나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민들은 함부로 호랑이란 말을 안하고 큰 짐승이라고 하며 조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위치의 서낭당은 약 40년 전에 옮긴 것입니다. 그전에는 마을 어귀 개울가에 있는 나무를 서낭으로 모셨는데 주위의 나무가 부러져 서낭님이 놀라 달아나셨다고 보고 지금의 서낭당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인가가 들어와 옮겼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낭나무는 그 후 약 십여 년 동안 죽어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살아났으며, 주민들은 절 받은 나무라고 하여 감히 아무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해서낭은 여서낭, 해당할머니라고도 합니다. 1반 마을 집 사이에 있는데 신체는 오래된 소나무와 아래에 있는 바위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몇 년 전 벼락을 맞아 부러져 왜소해졌습니다. 나무에는 창호지로 예단을 바쳤고 열기머리를 걸어두었습니다. 아래에 시멘트를 발라 제단을 마련하고 지름 50cm 정도의 남근석을 모셨습니다.(이 돌은 위패와 같은 의미로 신앙됩니다.) 여기에 잔을 붓는다고 합니다. 당 주위는 길이 5m, 폭 3m 정도의 돌담을 쌓았는데, 옛날에는 이곳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나 지금은 길을 지나 바다까지 10m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갈남의 서낭고사는 일년에 두 번 올리는데 치성 드린다고 합니다. 시기는 정월 첫 子일과 10월 첫 午일입니다. 먼저 서낭당에 올라가 자정에 제물을 진설하고 축을 읽고 집집마다 소지를 올려주고, 이어 해당에 가서 어업하는 집의 소지를 올려줍니다. 치성 드리기 약 한 달 전에 삼제관을 선정하는데 이는 그동안 근신하라는 의미입니다. 제물을 장만한 사람이 초헌관을 맡으며, 제물은 과거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이때에는 오직 삼제관만 이 제물을 만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돼지머리, 쇠고기, 어물, 과일, 삼실과를 쓴다. 갈남의 특이한 풍속으로 도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도가계는 서낭당 고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는 모임입니다. 계수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 중 건강한 분으로 선정하고, 치성 드리기 한 달 전 제관을 선정하며, 치성이 끝난 다음 날 하기(下記)보면서(결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민 전체가 음복합니다. 도가계는 마을 사람 누구나 참여하게 되어있는데 이 회의에서는 서낭고사 외에 마을의 문제를 의논합니다. 도가계는 마을이 공동으로 소를 키워 만든 돈과 어촌계의 도움을 받아 만든 자금의 이식으로 고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서낭제를 지내고 난 후에 거리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행해지는 거리제는 ‘객귀제사’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객귀의 침입을 막고 우환을 방지하려는 것이 목적으로 현재 내미로리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천기리에서는 서낭제가 끝나면 용왕제와 거랑제(거리제)를 지냅니다. 남자들만 참가하여 엄숙하게 지내는 서낭제와 달리 용왕제와 거랑제에는 부녀자들도 참가할 수가 있습니다. 용왕제는 물에 빠지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에서 올리는 것이고 거랑제는 길에 나가 객사하여 돌아다니는 객귀들을 잘 풀어먹이기 위해서 모신다고 합니다.

천제당 제사

삼척에는 천제(天祭)를 올리는 마을이 있습니다. 신기면의 고무능리,미로면의 내미로리가 대표적입니다. 이중 내미로리의 천제봉 제사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0년에 한번씩 모시는 천제봉 제사에는 반드시 왼소 한 마리를 잡아 생고기를 제물로 써야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재정문제상 소를 잡지 못하다가 35년만인 1993년 7월에 지냈던 제사 때는 소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소를 잡을 때는 살아있는 소를 천제당에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직접 잡습니다. 또한 제주를 빚어 특별히 사용합니다. 천제는 밤 12시를 기해 지내는데 이때는 남자주민들만 참석합니다. 생기를 맞추어 선정한 삼헌관을 중심으로 제사를 모시는데 제주를 올린 후 축문을 읽고 경건하게 합니다.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음복을 하기 위해 음식을 골고루 돌려 복을 함께 나눕니다.

초곡리에도 상천지신을 모시는 천제당이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성황당에서 망제로 대신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천제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 성황당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하월천리는 마을 입구의 숫서낭과 마을 끝에 있는 암서낭 그리고 마을 뒤편 봉화산의 천제당을 모십니다. 천제당 신앙의 의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제당은 대개 돌을 쌓아 울타리를 만든 형태로 집을 짓지 않습니다. 하늘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기에 막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미로리에서는 소를 위해 천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성기신앙(남근봉헌제)

행정구역상 원덕읍 갈남2리인 신남은 남근을 모시는 것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지금도 신남의 서낭당에는 나무로 깍은 남근이 수십 개 잘 엮어진 채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근은 서낭제를 올릴 때 깎습니다. 신남의 서낭제는 정월 대보름날과 시월의 첫 오(午)일에 지냅니다. 제사를 午일에 모시는 이유는 처녀의 기가 세다고 하여 가장 기가 센 말날로 잡은 것이라고 합니다. 서낭당은 본당인 해신당이 바닷가에 있고, 큰 당은 산 속에 있는데 큰 당은 최근 산불에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해신당은 처녀가 해물을 따기 위해 장차 그녀의 남편이 될 사람이 애바위에 데려다 주었는데 거기서 폭풍우를 만나 죽게 되자 죽은 처녀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당을 만들어 제를 지내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녀가 죽은 뒤 고기가 안 잡혔는데 한 어부가 술에 취해 해신당 자리에 오줌을 누었더니 그후 만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부터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거나 해신당 치성을 드릴 때는 신(남근)을 깎아 해신당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당주와 제관은 서낭제 올리기 2주 전에 정합니다. 제관은 큰 당으로 3명이 가고 해신당으로 2명이 가서 동시에 제사를 주관합니다. 당주는 제사에 쓰일 음식을 준비하여 큰 당으로 가게 됩니다. 금줄은 서낭제 지내기 3일전에 당주집과 두 서낭당에 칩니다. 제관은 제사 지내는 날 향나무를 베어다가 저녁에 해신당에 걸어놓을 신을 깎습니다. 신은 세 개나 다섯 개, 일곱 개 등의 홀수로 깎는데, 보통은 다섯 개입니다. 제물은 일반제사와 같은 음식을 씁니다. 육고기는 소고기를 올리고 돼지고기는 제물로 쓰지 않습니다. 메는 큰 당과 해신당에 각각 하나씩 올립니다. 또한 시루떡을 양쪽 당에 하나씩 놓습니다. 옛날에 정월 보름 제사 때는 소를 잡아 미역국을 끓여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복을 하였다 합니다. 제사비용은 어민들이 전복이나 해삼 등의 해물을 채취하여 적립한 동네 자금으로 충당합니다.

짐대서낭

원덕읍 임원과 미로면 고천리, 활기리에서는 짐대서낭을 모시고 있습니다. 짐대는 흔히 다른 지역에서 솟대라고 부르는 것으로 긴 나무 위에 새 모양을 깎아 세운 것입니다. 짐대는 대개 마을에 들어오는 액을 막아준다고 믿습니다. 먼저 임원리의 짐대를 보면 3m 정도 높이의 소나무 기둥에 나무로 새를 (이곳에서는 갈매기라고 부릅니다) 세 마리를 깎아 올려놓은 모습이었고 새들은 모두 북쪽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임원2리에 있는 짐대는 나무 위에 올려놓은 오리가 떨어져나가 기둥만 남아있습니다. 짐대의 몸통에는 20cm 너비의 검은 띠와 붉은 띠가 마치 용이나 뱀이 올라가는 나선형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짐대는 바다로부터 오는 재앙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짐대 옆에는 성황당 건물이 있습니다. 남성황이라고 합니다. 1리에는 두 명의 처첩인 여서낭이 있어 굿을 할 때에는 대를 내려다가 모십니다. 풍어제 하루 전날 무당이 칼을 들고 짐대에 가서 짐대 몸체에 종이를 걸어놓고 칼을 짐대에 던져 꽂히면 ‘성황님 오셨다’고 합니다. 대방골이라 부르는 미로면 고천리 5반에도 짐대가 있습니다. 짐대 위의 오리는 1983년 이전까지 나무로 깎아 만들어 올렸으나 지금은 슬라브로 바꾸어 달아 놓았습니다. 역시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우제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목적으로 올려진 기우제는 여러 마을에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고천리는 대방골에 있는 "용소" 에서 기우제를 합니다. 하지가 지나 여름이 되어도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용소" 에서 개를 잡고 그 피를 바위에 칠하면 이를 씻어 내리기 위해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용소" 는 상당히 깊다고 널리 알려진 소(沼)입니다. 과거 이 곳에서 용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전해져 용소라는 이름이 붙어졌다고 합니다. 용화에서 동력배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의 바다에 용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가뭄이 들면 그곳에 도포와 갓을 쓰고 정장을 한 사람들이 개를 가마니에 넣어 제를 지내고 바다에 던졌다고 합니다. 제사가 잘 올려졌을 때에는 돌아오는 길에 바로 비를 만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임원에는 용왕굴이라고 하여 바다로 뻗어나간 능선에 굴이 있는데 가뭄이 들면 이곳에 배를 타고 들어가 산 개를 바치는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민속신앙자료는 [삼척의역사와 문화유적](삼척시ㆍ관동대학교박물관, 1995년) "삼척시의 민속자료" 편에서 발췌·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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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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