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에서 주(州) 군(郡) 현(縣)제도를 실시한 것은 제22대 지증왕 6년(505년) 2월인데 이 때 동해안에는 유일하게 실직국(삼척)에 실직주를 설치했습니다. 이 실직주에 첫 군주로 부임한 인물이 이사부(異斯夫)였으며, 신라시대 군주(軍主)라는 이름은 이 때 처음 생긴 것입니다. 군주는 지방행정의 수장일 뿐 아니라 군사까지 총괄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는 지위였습니다.

실직주의 군주로 부임한 이사부의 성은 김씨이며, 신라 제17대 내물왕의 4대 손(孫)으로 이름은 태종(苔宗)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흔히 이사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사부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3국 정립시대로 가던 때, 신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3대에 걸쳐 정치. 군사. 학문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산국과 대가야 정벌을 완수했고, 진흥왕 때에는 병부령으로서 중앙정치와 군사의 실권을 장악했으며, 왕에게 아뢰어 국사(國史)를 편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사부의 많은 활약 가운데서도 우리 삼척과 연관된 것은 우산국(于山國) 정벌입니다. 이사부가 실직주의 군주로 부임할 당시 울릉도는 우산국이라는 부족국가였으며, "우혜" 라는 왕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우혜왕은 대마도에서 "풍" 이라는 미녀를 데리고 와 왕후로 봉한 다음부터 정사는 돌보지 않고 풍미녀와 사랑놀음에 빠졌습니다. 게다가 왕후의 사치를 위해 삼척의 해안마을은 물론이고, 멀리 신라의 인근까지 노략질의 손길을 뻗쳤던 것입니다. 이에 신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마침내 신라왕은 실직주의 군주 이사부에게 우산국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511년 이사부는 즉시 출병하여 우산국에 접근했지만 천연요새와 같은 지형과 주민들이 사나워서 힘으로는 정벌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되돌아온 이사부는 군사를 철저히 훈련시키고, 이듬 해인 512년 실직주를 그대로 존속시킨 상태에서 영역을 확장하여 강릉의 하슬라주 군주에 오른 후 다시 우산국 토벌길에 오릅니다. 삼척의 정라항에서 우산국에 다다른 이사부는 우혜왕에게 사신을 보내 항복하도록 권합니다. 그러나 우혜왕은 지난번 싸움에서 후퇴한 신라군인지라 얕보고 그 자리에서 사신의 목을 벤 후 전투를 시작합니다. 이사부는 계획했던 전략대로 전투를 이끌어 갑니다.

모든 군선의 뱃머리에 만들어 세운 대형 나무(木)사자로부터 일제히 불을 뿜게 하고 또 화살도 쏘게 하며 군선을 몰게 했던 것입니다. 이 광경에 우산국의 군사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커다란 짐승이 입에서 불을 뿜고 있으니... 아연실색했던 것이지요. 이 때 신라의 군사들이 합창하여 큰 소리로 "즉시 항복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서 섬사람들을 몰살시키겠다" 고 위협했습니다. 이미 이상한 짐승에게 질려버린 우산국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한 데다가 신라군이 쏘아대는 빗발치는 화살을 피하기 바빴으므로 우혜왕은 자신의 투구를 벗어 이사부의 군문(軍門)에 던지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우산국은 멸망하고 이 때부터 실직주의 관할영지가 된 것입니다.

512년. 이렇게 우산국은 멸망했지만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으니 울릉군 서면 남양포구의 사자바위와 투구바위가 그것입니다. 신라군이 군선(軍船)에 싣고 왔던 나무사자가 울릉도에 내려져 바위로 변했다는 사자바위, 우혜왕이 항복할 때 벗어던진 투구가 남아 투구봉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아직도 울릉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척시에도 우산국 정벌의 기념물이 있습니다. 사직동과 근덕면의 경계(옛 삼척시.군의 경계)인 한재 길 옆에 세워진 사자상과 동해시와 경계인 등봉리 주유소 길 옆의 사자상(獅子像)으로 1986년 박환주시장 재임시 향토사학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우산국 정벌 때 활용했던 나무사자를 기념하는 뜻에서 삼척시 경계지역에 돌사자상을 설치해 둔 것입니다.

우산국 정벌,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의 영역s으로 편입시켰기에 울릉도와 독도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토로 확실하게 자리매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참고자료 : [삼척시지], [울릉군지], [삼국사기], 김영기, "실직국의 인맥",[실직문화]제3집, 삼척문화원,1992


삼척지역의 삼국시대 유적과 유물

  • 갈야산, 원당동, 사직동 고분 ; 금귀고리, 토기, 옹관 등
  • 동해 추암동 B지구 고분 ; 출(出)자형 금동관 출토(두개골과 치아 분석 결과 40대 여성이 주인공.
    신분은 종교적 기능담당자 또는 경주에서 파견한 관리자, 4-5세기에 급성장한 철 기술자 등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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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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