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지방제도는 대원군 집정기(1864-1873)가 끝나고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의 새로운 문물과 제도의 도입으로 흔들리다가, 갑오경장 다음 해인 고종32년(1895) 소위 을미개혁으로 일컬어지는 국가제도 전반에 대한 일대 개혁이 단행되었습니다. 종래의 8도제를 폐지하여 13도제를 채택하고, 구 제도 하의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을 폐지하고 전국을 336개의 군(郡)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이 때 삼척도호부도 삼척군(三陟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방행정의 수장인 도(道)관찰사, 부윤,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을 페지하고, 부에는 관찰사. 군에는 군수를 배치하는 동시에 종래 각 지방의 수령이 통괄하던 사법권과 군사권을 분리시겼습니다. 이 때 삼척포진과 평릉찰방제도가 없어졌습니다.
군(郡)에는 대신의 추천에 의거 내각에서 발령하는 주임관(奏任官)이 배치되어 도(道)관찰사의 지휘 감독을 받아 법령에 의하여 관내의 행정업무를 관장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향회(鄕會)제도를 채택하여 군회(郡會)는 대회(大會), 면회(面會)는 중회(中會), 리회(里會)는 소회(小會)로 하고, 군회의 경우 군수와 각 면의 집강(執綱 ; 면장)과 각 면에서 선출된 2명의 위원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각급 향회의 부의사항은 교육, 호적, 도로, 납세, 흉년 때의 환난상휼 등 18개 항목에 달했습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를 맞아 행정의 주도권이 일제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제(朝鮮總督府制)가 공포되면서 지방제도의 개편과 정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방행정구역을 13도(道), 317군(郡), 4,322면(面)으로 개편하고 종래의 한성부(漢城府)를 경기도의 관할하에 두는 한편 "면(面)에 관한 규정" 을 공포하여 면(面) 방(坊) 사(社) 등 다양하게 불리우던 명칭을 모두 면으로 통일했습니다. 그리고 1913년에는 정령(政令)으로 도와 부 군 면 동 리의 관할구역을 대폭 조정하였는데 이 당시 조정된 지방행정구역과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14년 삼척 관내 12개 면 중 부내(府內) 말곡(末谷)을 합하여 부내면이라 하였고, 도상(道上) 도하(道下) 견박면(見朴面)을 합하여 북삼면(北三面)이라 하였습니다. 부내면은 1917년 삼척면으로 고쳤다가 1938년 삼척읍으로, 북삼면은 1945년 북평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60년 상장면(上長面)이 장성읍(長省邑)으로, 1963년 소달면(所達面)이 도게읍(道溪邑)으로 승격되고, 1973년 장성읍 황지리가 황지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

1980년 4월 1일 북평읍과 북호읍을 합하여 동해시로 승격 분리되고, 1980년 12월 1일 원덕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1년 7월 1일 장성읍과 황지읍을 합하여 태백시로 승격 분리되었습니다.

1986년 1월 1일 삼척읍은 삼척군에서 분리되어 시(市)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4월 1일 원덕읍에서 가곡면(柯谷面)이, 1989년 4월 1일 도계읍에서 신기면(新基面)이 각각 분리 탄생되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1월 1일 삼척군과 삼척시를 합하여 삼척시로 개편하였습니다. 현재 삼척시는 2읍(도계·원덕), 6면(근덕·하장·노곡·미로·가곡·신기), 4동(행정동 : 남양·성내·교·정라)을 관할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삼척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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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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