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총(石花塚)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東幕里)의 양지 둔지마을에 14대 300년 동안 대를 이어 산전을 개간하고 살아온 최씨 집안이 있었다. 어느 해 최장수라는 사람의 여동생이 출생하였다. 점점 커 갈수록 천하일색 미인으로 마치 선녀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름을 석화(石花)라 불렀다. 석화라고 지은 이유는 돌에 꽃이 필 리가 없다 하여 지었다 한다. 그 만큼 절세의 미인이었다. 
때는 중국 연호 함풍(咸豊)13년 경인데, 석화는 평상시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으며 주야로 불안감을 품고 지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천하일색 미인은 같은 배필이 없으면 한 평생 출가도 못하고 수절하다가 자살하는 것이 그 시대의 법도였다. 그런데 석화가 나이 30세에 달할 때 춘삼월의 춘기(春期)를 못 이겨 비관을 품고 둔지 앞 피소의 깊은 곳에 투신자살하였다. 
몇 해 후에 경주 배씨 댁에 환생하였다는 소식이 왔다는 전설이 있으나 둔지마을 적은 골 석화총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그 아리따운 석화가 아직 짝을 못 만나고 원한을 품고 있는 듯하다. 석화가 일년중 혹 한번 웃으면 동리 사람들은 꽃이 웃는다고 경탄하여 마지않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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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1-06-01 16: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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