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경(金憲卿)

시대 :
조선시대
본관은 강릉, 자는 장익(章益), 호는 휘남(輝南), 연중(演重)의 조카. 성품이 강직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의가 돈독하였다. 그리고 경사(經史)에 능통하였으며, 글씨도 잘 썼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이 일어났을 때 영동지구에 의병봉기가 일어나자 삼척지구의 창의장(倡義將)으로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1907년(융희 1) 삼척군 주정(主政)으로 임명되고, 다음해에 군수서리(郡守署理)가 되었다. 또 이때 삼척향교의 신유림파(新儒林派)와 구유림파(舊儒林派)간의 논쟁이 벌어졌을 때 서로간의 알력을 조정 무마시켰다. 그후 터무니없는 일로 고소를 당하여 1910년 서울의 감옥에서 사망하자 향리에서 시체를 운구하여 돌아와 사림(士林)들이 예장(禮葬)하였다. 유고(遺稿)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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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의 인물 게시물 목록 번호, 시대, 이름
번호 시대 이름
71 조선시대 김학문(金學文)
72 조선시대 김학순(金學淳)
73 조선시대 김학호(金學鎬)
74 조선시대 김한경(金漢卿)
75 조선시대 김헌경(金憲卿)
76 조선시대 김현좌(金顯佐)
77 조선시대 김현하(金顯河)
78 조선시대 김형진(金炯晋)
79 조선시대 김 희(金 熙)
80 조선시대 남규벽(南奎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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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2-12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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