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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산에 대한 연구

작성일
2022-05-02 19:48:41
작성자
김○○
조회수 :
205
 근산에 대한 연구 
                                                                          김 강산

1. 서 론 

근산은 강원도 삼척시 근산동에 있는 산으로 해발506.6m의 산이다.
전하는 말에 어지간한 삼척 땅에서 다 보여 뒷뚜루(뒷뜰:북평)에서도 보이고 미로에서도 보이는 산으로 매우 신성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조개’에서는 건산치에 올라야 보이고 ‘멀개’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실직국의 중심지인 삼척의 명산이다.
지금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산으로 너무 아쉬워, 옛 문헌을 읽고 현장답사를 통해 신성한 산의 위상을 찾아 높이고자 한다.

2. 본 론

1). 푸닥거리를 좋아하는 삼척사람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조의 풍속(風俗)에 보면,
“무당과 귀신을 믿고, 사람들의 성품은 재주가 많으며, 오금잠신에게 제사한다.”(信巫鬼 人性多巧 祭烏金簪)(1)
라고 하였다.
특히 오금잠(烏金簪)에는 자세하게 설명도 하였으니,
“고을사람들이 비녀를 작은 함에 넣어 도호부 동쪽 모퉁이에 있는 나무 아래에 갈무리하고 매년 단오에 관리와 백성들이 꺼내어 제사한다. 다음날 다시 갈무리하는데, 전하는 말에 고리의 태조 때 물건이라 한다. 그러나 미심쩍다. 옛일이라 관에서 또한 금지하지 못 한다.”(邑人盛簪小函藏於治所東隅樹下每遇端午吏民取出奠而祭之翌日還藏諺傳高麗太祖時物然未審其所以故事官亦不禁)(2)
라고 하였으니, 삼척사람들은 푸닥거리를 좋아 했던 것 같다.
어찌하여 그럴까?
그것은 삼척지방의 지형과 연관이 있고,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우리민족의 마음속에 깔린 전통 풍습이 표면에 나타난 것이라 본다.
삼척지방은 지형적으로 바다와 산악이 혼재되어 있어, 상당히 열악한 환경에서 대자연에 의지한 결과이고, 연방제 나라인 고조선의 연방국가인 실직국(悉直國)의 땅이기에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전통신앙의 풍습이 강하게 남아 푸닥거리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 본다.

2). 삼가는 산

근산이라 하면 가까운 산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가깝지 않다.
삼척군에서 만든 삼척군지(三陟郡誌)에 보면,
“동대 동쪽에 광진이 크고 넓은 줄 알았더니 아주 협소한 적은 마을이고, 죽서루 서쪽에 근산이라 하여 가까운 줄 알았더니 30리나 먼 곳에 있는 산이다.”(東台東廣津瘦 西樓西近山遠)(3)
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근산이 우산을 세운 것 같아 건산(建傘)이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삼척사람들은 근산을 건산이라 한다. 특히 근덕면 사람들은 건산치라 하는 곳이 있는데, 가 보면 근산이 보이는 고개(峙)이다.
조선 성종 때 지은 책인 동국여지승람에 近山(근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때 삼척에서 적어 올린 관리가 가까울近(근)자를 써서 올렸기에 그렇게 등재가 된 것이다.
그러니 확실한 이름은 잘 모르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가까울近(근)자가 맞는지도 모른다.
근산은 실직 땅 곧 삼척 땅에서 중요한 산이다.
지금은 옛날과 다르지만, 옛날엔 제사가 아주 중요했다. 모든 일의 중심이 제사이며 제사를 위해 모든 것이 존재한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근산은 실직 땅 곧 삼척 땅에서 제사의 중심이 되는 산이고 정상에서 이루어지는 성대한 제사를 바라보는 삼척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성산(聖山)이다.
근산에 가 봤는가? 삼가고 조심조심해야 하는 산이다. 조금만 방심하면 구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삼가 조심조심 올라가야 하는 산이고 산꼭대기에 신사(神祠)가 있으니 더욱 삼가야 하는 산이다. 그러므로 가까운산 近山(근산)이 아니라 삼가는 산 謹山(근산)인 것이며 태백산을 삼가 바라보기 위한 覲山(근산)이고 산을 오르자면 가파르고 힘들어 다리가 아프니 건산(蹇山)인 것이다.

3). 망제의 산

동국여지승람 삼척도호부 祠廟(사묘)에 보면, 近山祠(근산사)가 나오는데,
“근산사는 도호부의 남쪽 10리에 있으며, 속칭 대천왕사라 한다. 고을사람들이 봄가을에 제사 한다.”(近山祠. 在府南十里俗稱大天王祠邑人春秋致祭)(4)
라고 되어 있다.
같은 책 같은 곳에 보면, 太白山祠(태백산사)가 나오는데,
“태백산사는 산꼭대기에 있는데, 속칭 천왕당이라 한다...(후략)...”(太白山祠. 在山頂俗稱天王堂...)(5) 
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근산사에서 태백산사를 향해 망제(望祭)를 올린 것이다.
이런 것을 증명하는 글이 있으니, 허목이 지은 척주지(陟州誌)에 보면,
“근산은 도호부의 남쪽 15리에 있으며, 산꼭대기에 신사가 있다. 고을 사람들이 제사하는데,‘태백사’라 한다. 다 받드러 모시므로, 이르기를 천왕신이라 하며 그로 말미암아 그 신사를 이름하여 ‘근산사’라 한다.”(近山在府南十五里最神峭上有神祠邑人祭太白祠者皆尊奉之謂之天王之神因名其祠曰近山祠)(6)
라고 하였고, 
단기4296년(서기1963년)에 편찬한 진주지(眞珠誌)의 척주부(陟州賦)에 보면,
“척주도호부 남쪽에 근산이 있고 그 꼭대기에 신사(神祠)가 있는데, 그 위에 천왕을 모신다. 귀신을 믿기에 금비녀를 제사하고 요사함을 일으키니 부사 정언황이 바른 힘으로 두랑당을 폐하고 제사를 금지하였다. 도호부 남쪽 15리에 근산이 있고 가장 꼭대기에 신사가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천왕신을 모시니 그 신사를 근산사라 한다. 옛날 오금잠이 있어 민속에 귀신을 믿고 이르기를 고리 때 유물이라 하며 왕신으로 섬긴다. 요사함을 일으키고 괴이함을 만드니 효종 4년 계사에 부사 정언황이 그 제사를 금지하고 오금잠을 석실에 가두니 두랑당이다. 임진병란 때 잃어버렸다. (節彼南兮近山盖有祠於其上名天王以信鬼祭金簪而興妖賴丁侯之正力閉社郞而禁祀 府南十五里近山最高上有神祠邑人崇太白神者皆尊之以天王之神名其祠曰近山祠古有烏金簪民俗信鬼謂麗朝遺物以王神事之興妖作怪孝宗四年癸巳府使丁彦璜禁其祀閉簪於石室謂之社(杜?)郞堂壬辰兵亂失簪)(7)
라고 하였으니, 삼척사람들의 정서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위 내용과 주변에 오래 산 노인들이나 전해오는 말들을 합쳐보면, 오금잠의 제사는 근산사에서 이루어졌고 근산사에서 태백산으로 향해 망제(望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분리되어 태백시라고 하여 행정적으로 다르지만 지난날에는 한 동네였다. 
‘사조동지명지’에 보면 상사미의 부정당(不淨堂) 조에 보면,
“돌모랭이를 지나 디디기벌로 내려오다 보면 35번국도 오른쪽에 있는 서낭당을 부정당이라 한다. 이곳 부정당은 그 역사가 오래되고 영험함이 널리 알려진 서낭당이다. 원래는 삼척사람들이 태백산 천제를 지내려 갈 때 이곳 부정당에 들러 부정굿을 하고 태백산으로 갔다고 해서 부정당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태백산 천제가 금지되고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자 마을 서낭당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부정당에서는 정월에 날받이를 해서 제사하고 오월단오에 제사한다.”(8)
라고 하였고, 태백시지명지의 통리 유령산령당(楡嶺山靈堂) 조에 보면,
“느릅령 꼭대기에 있다. 삼칸 겹집 팔작 한옥으로 부연이 있고 절집처럼 단청을 하였으며 전면 축대 좌우에 돌사자상이 놓여있다. 신라 때 일성왕이 태백산 천제(天祭)를 위해 넘던 고개이고 조선조 때 천제가 극심할 때 삼척사람들이 천제를 올리기 위해 넘던 고개이자 부정한 일이 생겨 돌아가게 되면 태백산을 향해 망제(望祭)를 올리던 고개였다...(후략)...”(9)
라고 하였으니, 삼척사람들이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며 부정을 털기 위해 부정굿을 하고 망제한 것을 알겠다.
삼척사람들이 태백산으로 가자면, 이틀은 걸리고 제사지내고 오고가고 몇 날은 걸린다. 가다가 부정한 것도 보게 되고 그래서 직접 태백산으로 가지는 못하고 근산에 올라 태백산을 바라보고 제사를 올리니, 바로 망제(望祭)인 것이다. 귀신은 앉아 천리 서서 만리라는 말이 있으니 바라보고 제사하여도 다 안다.
특히 근산은 실직 땅 곧 삼척 땅 어지간한 곳에서는 다 보이는 산이다. 삼척시내는 물론이고 뒷뚜루(뒷뜰:북평)에서도 보이고 미로에서도 보이고. 근덕(조개)에서는 건산치에 올라서면 보인다. 근산 꼭대기에서 태백산이 보인다. 태백산을 향해 제사한다. 그러니 망제산(望祭山)이다.

4). 근산 답사기

서기2021년 12월 7일 근산골로 들어갔다. 지도에서 본 것과 달리 골짜기가 깊다. 들어가다가 버스 종착지가 나오고, 왼쪽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읽어보니 소화11년이라 쓰여진걸 보니 일제(日帝) 때 세운 구장(區長)의 비(碑)이다. 골짜기 끝에 광장이 있고 왼쪽에 가족묘원이라고 써 놓은 곳이 있다. 더 들어가자 오른쪽에 집터로 보이는 곳이 있고 자동차로는 더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두 갈레 길이 나오며 안내판이 있는데, 안내판에 근산 그림이 있고 1코스와 2코스가 표시되어 있다. 
나는 1코스인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산비탈에 묘(墓)가 많았고 좀 더 올라가자 분지처럼 생긴 지형에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데, 누군가가 일부를 잘라 놓았다. 그곳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올라서자 전기선철탑이 나오는 산등성이다. 삼척시 일부와 뒷뜰(북평) 일부가 보인다. 낙엽이 많이 쌓인 산등성으로 난 길을 힘겹게 나아갔다. 밑에는 돌이다. 근산이 보인다. 우뚝 솟은 것이 흡사 종(鐘)을 엎어 놓은 듯, 사람의 머리 같다는 느낌을 준다. 가파르다. 철제 난간이 있다. 산의 동쪽 같다. 정상에 오르니 멀리 태백산이 바라다 보인다. 돌아서니 동해(東海)가 보이고 삼척시내와 뒤뚜루(뒤뜰:북평)가 환히 내려다보이고 미로면 일대도 보인다. 동남쪽으로 맹방의 바닷가와 시멘트 공장도 보인다.
정상에 산불감시초소로 보이는 구조물과 휴대폰 중계기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고 가운데쯤에 측량표시점 같은 것이 묻혀있는데, ‘삼척22’ 표기가 있고 그 옆에 척주산악회라고 쓴 4각형의 돌기둥 윗부분에 ‘근산 504m' 라고 쓰여 있다.
近山祠(근산사)가 있었음직한 장소를 찾아보니, 그곳에는 오래되어 흔적이 희미한 묵묘로 보이는 것이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명당이라고 여겼는지 그곳에 墓(묘)를 썼으나 묵어있었다.
명산에 가만히 묘를 쓰다니 삼척사람들은 뭐했나? 혈 지른 것이나 같은데, 이러고도 삼척이 잘 되나? 이곳에 묘(墓)를 쓴 자는 혈지른 왜놈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북쪽은 가파라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나 남쪽은 낮은지 축대가 남아있었다. 남쪽으로 출입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곳도 있다. 근년에 누군가 기도를 했는지 제상(祭床)으로 보이는 것이 있고, 당집을 지었던지, 아니면 다른 용도인지 시멘트로 된 사각형의 돌 비슷한 것이 몇 개 보인다. 내 눈에 태백산에서 뻗어온 산줄기이지만 삼척 땅의 모든 산이 이 곳을 향해 읍 조리는 것 같고 삼척 땅에서 가장 높아 앞도 없고 뒤도 없이 그냥 하늘로 솟은 것 같다.
내려갈 때 2코스로 갔다. 매우 가파르다. 석회암 지대인지 바위가 많다. 산 전체를 살펴보니, 옛날에는 2코스로 길이 있었고, 1코스는 근년에 만든 것 같다. 근산 꼭대기를 오르자면 2코스의 길 같은데, 정말 코가 땅에 닿을 것 같고 오르자면 신심(信心)이 절로 날 것 같다. 한참 내려오니 평평한 산릉선이 나온다. 온통 석회석이다. 빙 돌아 산등을 타고 내려오는데, 갈림길이다. 아마도 본디의 길은 산등으로 이어진 것 같다. 갈림길에서 꺾어 왼쪽 근산골로 내려왔다.

3. 결 론

근산은 삼척의 명산이다.
그 꼭대기에 근산사(近山祠)라는 사당(祠堂)이 있었다고 한다.
태백산을 향해 망제(望祭)를 올리던 사당으로 그 영험함이 소문이 났었다. 왕조(王朝)가 바뀌고 시대가 변했지만, 옛 문헌에 기록된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방치하여 버려둘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정비하여 먼 미래를 바라보고 후진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축제의 장소로 만들면 좋을 듯하다.



※ 註(주)
(1) 盧思愼 東國輿地勝覽 明文堂 1981
(2) 盧思愼 東國輿地勝覽 明文堂 1981
(3) 三陟郡誌 三陟郡 1988
(4) 盧思愼 東國輿地勝覽 明文堂 1981 
(5) 盧思愼 東國輿地勝覽 明文堂 1981 
(6) 許穆 陟州誌 三陟鄕土文化硏究會 1991
(7) 崔晩熙 眞珠誌 陟州賦 1963
(8) 金剛山 士助洞地名誌 태백문화원 2007
(9) 김강산 태백시지명지 태백문화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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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6 23: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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