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잡은 전설

호랑이를 잡은 전설은 삼척시 근덕면 동막 양지마을 빗내골의 이야기이다. 고종 40년 계묘년, 보리 흉년이 들던 해의 일이다. 노소를 막론하고 겨울에 사냥하러 나섰는데 호랑이를 발견한 곳은 인가 근처인데 지금의 빈냇골 입구 왼편 절벽 중간 위치쯤이었다. 호랑이의 크기는 불과 큰 개 정도의 불호랑이다. 두 사람이 추격했는데 3백미터 쯤 가서 호랑이는 힘이 빠졌는지 바위 밑에 있는 구멍에 들어가 고함만 쳤다. 30여명의 장정이 있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떤 노인이 소나무 가지로 구멍을 덮자는 의견을 내놓아 소나무 가지를 베어 구멍을 덮으니 호랑이가 그것을 뚫고 나왔다. 그때, 약빠르게 한 장정이 창으로 찌르니, 호랑이는 창을 깨물었다. 그만 그 장정은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창을 잡아당기니 창끝이 흠이 파여 있었다. 호랑이는 흰 눈 위에 붉은 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더욱 성을 내었다. 
구 한국 당시에 대총 화포를 가진 포수가 셋이 있었는데, 그 중에 박치관이란 포수가 한방을 쏘았다. 그런데 호랑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러 장부들 중에 한 장부가 목숨을 걸고 호랑이 앞에 나서 호랑이를 밀치니 호랑이는 죽어 있었다. 두골에 정통으로 맞았었다. 
호랑이를 지고 와서 껍질을 벗기니 꼬리까지의 길이가 9척이상 이었다. 사람들은 배가 고파 호랑이 고기를 삶아 먹었는데 그 맛은 미텁텁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호랑이를 잡으면 호랑이 껍질을 꼭 관에 바치게 되어 있었다. 박장헌(朴長憲)이란 노인이 그 껍질을 바치러 갔다. 지금은 정라(汀羅)라 부르지만 옛날에는 진영 영장도(鎭營營將都)이다. 직품은 지금 동해 해군사령관 격으로 강릉, 삼척, 울진, 삼군을 통괄하였다. 호랑이 껍질을 영장도에 바치러 갔더니 영장께서 무식한 촌놈들이 위험한 짓을 했으니 벌로 볼기 20대를 치고 1주야를 구류 살리되 하루 한끼씩만 주라는 명령을 하였다.
1주야를 살고 진영“건네불”로 숨어 와서 벌금 30냥을 동리에서 마련한 돈으로 바치고 용서를 받아 해결되었다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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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1-06-01 16: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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